“박경리 선생의 대하(大河)소설 ‘토지(土地)’는 경남 하동에서 시작해 만주의 간도(間島), 서울, 진주, 평양으로 전개되는 소설 무대부터 한국인의 국토 의식을 새롭게 자극해 줍니다.”
이달 초 본문만 600쪽 넘는 분량의 ‘박경리 이야기’를 출간한 김형국(80)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해방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모태로 578명이 등장하며, 작가가 집필한 지 26년 만에 완성한 우리나라 소설은 ‘토지’가 유일무이하다”고 말했다.
“‘토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특히 ‘월선’의 가슴에 용솟음치는 사랑의 물결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속삭임 못지않게 박경리의 격조 있는 문체로 뜨겁게 되살아나 있어요.”
미국에서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0년 당시 3부까지 완간된 ‘토지’를 세 번 읽고 큰 감동을 받아 1983년 봄 박경리 선생을 처음 만나뵙고, 1994년 ‘토지’완간기념사업회 위원장, 토지문화관 건설위원장 등을 맡으며 30년여간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고 했다.
“생전의 인연 외에 대부분은 문헌을 통해 박경리 선생의 생애를 복원하는 일이 힘들었어요. 박경리 선생의 미덕(美德)은 자신의 불운(不運)을 승화 내지 초극하려는 몸짓의 치열함에 있어요. 그는 글이 아니고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彼岸)의 고지를 향해 지성(至誠)으로 투신했습니다.”
그는 “박경리 선생은 홀로된 어머니 가정에서 자랐고, 6.25동란 때 남편과 사별(死別)했고, 그 와중에 어린 외아들은 사고사(事故死)로 잃었으며 외동딸의 남편(시인 김지하)이 한 오랜 옥살이도 견뎌내야 했다”며 “그는 이처럼 이어지는 고통과 누적되는 박복(薄福)을 이겨내며 탁월한 미학(美學)을 구현해 냈다”고 했다.
“이번에 낸 ‘박경리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인물 평전(評傳)인 동시에 ‘박경리 미학론’ 탐구서입니다.”
그는 2007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15년여 동안 10여 권의 책을 냈다. “매일 밤 1~2시에 취침해 오전 6시 전에 일어납니다. 조간신문 4개를 읽고, 고전음악 감상과 하루 7000~8000보 걷기로 건강을 다져요. 골프는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았고 60대 중반까지 등산을 즐겼어요.”
김 교수는 “지금도 술은 반주(飯酒·밥을 먹을 때에 곁들여 마시는 술) 삼아 몇 잔씩 하지만, 담배는 십 수년 전 끊었다”며 “가장 중요한 일과는 매주 1~2회 서울 광화문 대형서점에 가 책들을 골라 사는 일”이라고 했다.
‘국토개발의 이론연구’ ‘한국공간구조론’ 같은 전공서적과 장욱진·김종학·최종태 등 국내 예술가 평전, 국궁(國弓) 관련 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50여 권의 저서를 발간한 그는 독서하며 저술하는 삶의 효능(效能·효험을 나타내는 능력)을 강조했다.
“2018년 10월 방영된 일본 NHK 프로그램은 건강 수명(壽命)에 좋은 최상책은 운동이나 음식이 아니라 독서라고 결론 내렸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은,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는 “‘글’이야말로 사람의 정체성(正體性)을 드러내는 금강석 같은 장치이고, 좋은 글은 일생을 통해 구사할 수 있는 식자(識者)의 힘”이라고 말했다.
“좋은 필자(筆者)가 되려면 반드시 좋은 독자(讀者)가 되어야 해요. 좋은 독자가 꼭 좋은 필자가 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책을 한 권 내려면, 진지한 자세로 제대로 책을 읽고 깊은 공부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들이 인생 후반전(後半戰)을 독서와 더불어 책을 쓰면서 보내면 좋겠어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나 부모님 이야기, 자신이 잘하거나, 또 꼭 하고 싶은 취미를 책으로 펴내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기를 권면(勸勉)합니다.”
그는 “화가 김종학 선생에 대한 후속편 저술을 포함해 몇가지를 계획·준비 중이며, 한·중·일(韓中日) 동북아 근현대사와 지정학 관련 책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고 말했다.
송의달 에디터 edsong@chosun.com
http://n.news.naver.com/article/023/000371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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