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 돌아가시기 직전 인터뷰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여행이 나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가장 능동적인 방법이라고들 합니다. 선생은 어떻게 책을 여행하셨는지요?
“책과 진리는 도서관에도 있고 길바닥에도 있고 쓰레기통에도 있어요. 쉽게 주어졌어도, 우리는 애써 못 가질 것들만 찾아다니니, 불행해요. 허허. 내가 빨간 옷 입었다고 산타클로스가 되는 게 아니듯, 책 읽었다고 지혜자가 되는 게 아니야.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서문부터 끝까지 읽고 ‘몇 월 며칠 독파’라고 쓰는 사람이에요(웃음).
대개는 앞에는 줄 치고 뒤에는 다 새 책이지. 90%의 독자가 중도 포기해요. 오죽하면 끝까지 읽으면 돈 주는 테스트를 해도, 통과한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책을 재미로 읽지, 의무로 읽나? 컴퓨터의 브라우저는 새싹을 뜻하는 말이에요. 짐승이 새싹 뜯어 먹듯 독서 하면 됩니다. 재미없으면 덮고 느끼면 밑줄 치는 거죠.”
-선생님 댁 서가에 책이 이렇게 많은데요?
“하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꺼워도 세 번을 읽었어요. 그걸 읽고 글을 썼죠. 그런데 대부분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없어요. 다 중간을 보죠. 의무적으로 연애해서 잘되는 거 봤어요? 책도 그래요. 만남이고 기회고 우연이죠.
나는 피난 가서 찢어진 책들을 재밌게 읽었어요. 지금도 제목이 뭔지 작가가 누군지 몰라. 찢어져서 모르니 상상을 해요. 책이 나한테 도전을 해와야지, 내가 책을 정복하려 들면 안 돼요. 책은 내게 말을 걸어요. ‘너 나 읽을래? 어렵지?” 슬슬 약 올리면서.”
-안 읽고 쌓인 책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군요!
“나는 이 방을 열어도 책 저 방을 열어도 다 책이야. 깔린 책이 몇만권이예요. 이걸 어떻게 다 읽어? 밤에 깨서 서가를 걸어 다니면, 애들이 요염한 자세로 나를 불러요. “나 여기 있어요~” 윙크하면서. 금박 칠한 제목에, 고운 디자인으로. 우연히 시선이 꽂힌 제목을 뽑아 훌훌 책장을 넘기다 기막힌 문장을 만나면, 딱 덮어요.”
-왜요?
“악 소리가 나거든. 감전된 것 같아. 내가 오늘 밤 깨어 이걸 펼치지 않았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문장… 그게 환희죠. 그게 독서예요. 기차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랑처럼, 운명이고 우연이죠. 난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보면 설레요. 저 속에 뭐가 있을까, 언젠가 만나면 운명적인 글을 쓰게 되겠지. 그래서 소가 풀을 뜯듯 자유롭게 책을 읽으라는 거예요. 책 쓰는 사람은 씨 뿌리듯 시스템을 쓰지만, 읽는 사람은 자유롭게 읽어요. 쓰는 감각, 읽는 감각이 서로 그렇게 달라요.”
출처 : http://biz.chosun.com/notice/interstellar/2022/01/01/6NTPJJ7EORHQLOONBANIV6VDM4/?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요약
책은 원래 90%의 독자가 중도 포기하는게 정상
책은 의무로 읽는게 아니라 재미로 읽는 것. 재미없으면 덮고 느끼면 밑줄 치면 됨
강박이 생기면 책 펴는거 자체가 부담일 때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이 글보고 좀 가볍게 책을 다시 마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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